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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오후의 조각

acowa 2009. 2. 22. 13:39

 일요일 오후, 조금 졸리다 싶을 만큼 느릿 느릿 짐을 하나 둘 챙겨넣고 옷장을 정리하다 문득 답답해져 창문을 열었더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운동장의 아이들 소리, 적당히 차가운 공기가 뒤섞여 묘하게 편안한 일상의 배경음이 된다. 아, 일요일이구나- 문득 깨닫고, 모처럼 일요일의 느긋함을 즐기고 있다는 기분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느긋한 기분으로 주말을 보내는 것이 얼마만인가, 놀라웠다. 그간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마음이 시달렸을까. 내 지나온 시간엔 조급함 뿐이었던 것 같다. 

 푹 잤다는 느낌이었지만 유쾌하지 않은 꿈.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아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다가, 쿠키를 한 개 먹고, 전 날 끓여둔 계란 죽으로 요기를 하고, 또 짐 정리를 하다가, 귀찮으면 또 음악을 듣다가, 보던 책을 몇 장 넘기다가, TV를 틀었다가, 그러다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다가, 또 짐 정리 조금. 혼자서, 내키는 대로 이것 저것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하고, 뭐든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대로 하며 보내는 것이 좋다. 

  부지런히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자신을 내몰았었다. 쉴 새 없이 자신을 다그치고 감시하고 조종하느라 온통 진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또 이렇게 지나고서야 나는 깨닫는다. 그간의 날들을 지나오느라 마음이 지쳐있었던 것. 모든 일에 나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고, 겪어온 날들이 남겨준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에 시달리느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내어주지 못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내 앞에 갖다 놓고 나니, 비로소 분명해진다. 조금 더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조금 더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안된다. 드디어 내가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마음에 잔잔한 바람이 들었다.

천천히 천천히 나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천천히, 그러나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