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hblah
낫지 않는 병
acowa
2009. 4. 15. 19:34
나에겐 낫지 않는 병이 하나 있다.
나은 듯 잊어버릴 때 즈음 어느 곳에 잠복해 있다, 나도 모르는 새 마음과 몸 이 곳 저 곳으로 전이되어 온통 나를 휘어감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사그라 들고 마는, 영원히 죽지도 낫지도 않는 그런 병.
지난 겨울을 지나오면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동안 나 자신의 면역력도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영영 다시 겪지 않겠거니 했던 것이, 가만히 제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다 나 자신의 면역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 문득 문득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미련하게도, 가라 앉음을 사라짐으로 나는 잘못 이해했다. 생명력이 넘치는 봄 빛에 내 안의 남은 찌꺼기 조차 나는 말끔끔히 증발해 버렸다고 믿었다. 단지 사라짐이 아닌, 내 안의 평안으로 가라앉게 된 것임을, 언제고 또 다시 자신이 흔들릴 때면 가라앉았던 앙금이 떠올라 내 안을 온통 뿌옇게 만들어 놓을 수도 있음을 나는 미련하게도, 어리석게도, 모르고 있었다.
또 다시 가라앉을 것이다. 사라진 듯 가라 앉고, 몇 번이고 다시 나타나게 되겠지. 인정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 비로소 깨닫고, 알고, 받아들이게 되니 다시 평안이 깃들게 될 것 또한 직감할 수 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 처럼 영원히 괴롭지도 않겠지. 나는 이제 병이라 부르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