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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눈을 감자

acowa 2009. 6. 21. 10:35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군것질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고구마나 견과류 같은 할머니 간식이 오히려 내 취향. 물론 그런 나도, 유일하게 먹는 과자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눈을 감자'. (두둥)  놀랍게도 내가 눈을 감자를 사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일본의 대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었다. 뭐 이게 웬 소 풀 뜯어먹는 소린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눈을 감자 , 마음의 동요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슬픔이나 고독감을 넘어선 , 
나 자신의 존재를 부리째 뒤흔드는 듯한 ,
깊고 커다란 물결이었다.
그 물결의 일렁임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었다.
나는 벤치의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그 일렁거림을 견뎌 내고 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내가 그 누구도 구제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이.



 하루키에 대해 드문 드문 알아가고 있던 그 즈음 현이언니가 짤막한 댓글로 추천해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늘 그렇듯 불같은 바람이 들어, 도서관으로 곧장 달려가 책을 집어 들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단숨에 읽어내버렸다. 가슴을 두드리는 한 구절 한 구절을 다이어리 한 구석에 빼곡히 써내려 가며 마음에 담고, 되새기고, 그로도 모잘라 어느 날엔 홈페이지 한 구석에 저 구절을 올려놓았는데, 나의 10년지기 베스트 K양께서 이리 댓글을 달아 놓으셨다.

K***** : 눈을감자 맛있는데..뭔가 하고 읽어보려다 '눈을감자' 보고 암생각도 안드네 (2006.07.19 00:42)  
acowa : ㅋㅋㅋㅋ 눈을 감자는 뭐니ㅋ 어떤 맛이야 궁금해 ㅋ (2006.07.19 01:24)   
K***** : 생감자맛 ..먹고싶어졌다.. (2006.07.20 01:04)  
  

 이것이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와 눈을 감자의 인연.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눈을 감자' 이 마법의 주문 같은 카피는 대체 누가 지으셨는지. 그 날 이후 나도 좋아하는 과자를 갖게 되었으니, 그대들 나를 위하야 편의점에 가시거든, 뭐 먹을래 하고 물어보지도 말고 그저 '눈을 감자'만 사다주시면 된다. 나는 눈을 감자 이외에 과자는 거의 먹지 않으니까. 뭐 가끔 눈을 감자가 없을 때 대용으로 '구운 감자' 정도.

 그러나 저러나 하루키의 저 소설을 다시 읽어야 겠구나. 비로소 나는 지금 하루키가 말하고 있는 저 세계의 끝에 와 있으니.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어떤 시점에서부터인가 내 인생과 삶의 방식들을 일그러뜨리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누구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뒤틀린 인생을 남겨 두고 소멸해 버리고 싶지 않다. 
내게는 내 뒤틀린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공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나의 삶을 그대로 남겨 두고 홀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소멸이 어느 누구에게도 슬픔을 주지 않고, 
또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공허함을 남기지 않는다 해도, 
혹은 또 그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나의 문제다.

분명히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은 나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묘하게도 내 안에는 상실된 것들의 잔재가 마치 앙금처럼 남아 있어 ,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지 않다.

눈을 감자 , 마음의 동요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슬픔이나 고독감을 넘어선 , 
나 자신의 존재를 부리째 뒤흔드는 듯한 ,
깊고 커다란 물결이었다.
그 물결의 일렁임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었다.
나는 벤치의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그 일렁거림을 견뎌 내고 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내가 그 누구도 구제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이.

순간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도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경험해 왔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혹시라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해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런 슬픔은 다른 어떤 형태로도 바뀌어지지 않고
다만 바람 없는 밤의 눈처럼 그냥 마음에 조용히 쌓여 가는, 
그런 애달픈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 언어로 바꾸어 보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아무에게도 전할 수 없었고 ,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전할 수 없어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언어를 폐쇄시키고 , 나의 마음을 닫아 갔다.
깊디깊은 슬픔에는 눈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도 없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