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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acowa 2009. 6. 18. 19:58

 요새 나는 요리와 사랑에 빠졌다. 완전히. 식욕 이외에는 그 어떤 욕구도 채워지지 않는 요즈음, 요리는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이자 낙이 되었다.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웠거나, 기가막힌 맛을 낼 줄 안다거나, 그도 아니면 먹기 아까울 만큼 아기자기 하고 예쁜 요리를 만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솜씨좋은 엄마 밑에서 먹을거 하나는 잘 먹고 자랐고, 중학교 때 부터 요리를 배운 동생 덕에 어깨너머로 흉내만 좀 낼 따름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요리를 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행복해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요리'라 부를 만한 요리를 했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나는 어릴적 아직 학생이던 이모, 외삼촌과 한 집에 산 덕에,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뒀지만 혼자 밥을 먹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엔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참치볶음밥이 전부였던 나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늦게 들어오시는 엄마 아빠를 위해 프라이팬 한 가득 볶음밥을 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동글동글 주먹밥을 만들어 정성껏 계란물을 입혀 노릇하게 구운다음, 접시에 쌓고 케첩으로 온갖 그림을 그려 전자렌지에 편지와 함께 넣어둔 기억이 난다. 그 날 밤 이불속에서 '엄마,아빠가 저걸 보고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에 혼자 히죽대던 기억, 아마 그 기억이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요리'한 날이 아닌가 싶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까닭은 바로 그 것이었다.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줄 누군가를 떠올리며, 내가 아끼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 후 부터, 나는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 물론 나른한 일요일 아침을 산뜻하게 만들어줄 나만을 위한 기분좋은 아침식사를 준비할 때 에도 나는 설레지만 - 요리란 자고로 타동사와 같아서 받아줄 목적어가 있을 때 비로소 빛이 되고, 살아난다. 요리를 하는 동안 그 환상적일 맛과 기뻐할 그 사람을 함께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아마도 그것이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아 - 요리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지만, 또 너무 두서없는 이야기지만, 다듬지 않기로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