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hblah

Dirty cash 2

acowa 2008. 9. 18. 00:31

 약속시간 보다 좀 일찍 도착한 탓에 여기저기 어슬렁 거리던 차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건 또 누군가...살짝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했더니,

"***씨 되세요?"
"네"
"아 네 지금 혹시 많이 바쁘신가요?"
"네????누구신데요?"

 모르는 번호라 살짝 불쾌한 듯 되물었더니, 대뜸 정중히 FM을 대며 학회장이란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 후배 녀석.

 이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OT때 얼굴 좀 텄다고 얼굴 볼 때마다 "누나, 밥~"을 외치던 녀석이었는데, 고것이 괘씸해서 내가 그 때마다 '선배들은 땅 파면 돈나오냐'며 구박깨나 했던 후배다. 물론 그런 녀석이라 밥은 한 번도 사지 않았다. 까짓거 한 번 사줄 수도 있었는데, 기어이 안 샀다. 못 사준게 아니라 안 사준게 맞다.
 
 그러고는 가끔 쪽지나 보내오는 정도로 연락을 하나 마나 했는데, 웬일로 전화까지. 더듬더듬 있는 말 없는 말 이어가며 지루한 통화가 한 5분 쯤 이어졌을까, 아니나 다를까 용건이 따로 있었다. 우리 과는 특성상 매년 가을이면 호텔에서 만찬 비슷한 과 행사를 갖는데, 과 행사중에선 1년 중 제일 큰 행사다. 요는, 이 행사를 이번엔 더 좋은 호텔에서 하게 되고, 뭐 뒷풀이는 어떻게 하고 하는데 그러니 스폰서를 좀 해달라는 거였다. 나 원...-_-

 너 이 자식, 리먼 브러더스 파산 하는 바람에 오늘만 누나 펀드가 얼마나 깨졌는지 알기나 하냐고 한 소리 하려다가, 2년 동안 학생회에 있을 때 생각이 나서 좋게 돌려 말했다. '요새 다 어렵다'고. ㅋㅋ

 근데 대뜸 동기 여자애들 이름을 줄줄이 대며 다 해줬단다. 얼마나 해줬냐 했더니 적게는 5만원 부터 보통 10만원씩들 해줬다나. 비겁한 자식.
"걔네 돈 많구나?"
 그러고 보니 다 삼*, **항공,**은행... 나보다 돈 많이 버는 애들이네.

 얘길 좀 듣다 나중에 다시 전화하마 하고 끊었는데, 이게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쁜거다. 이번 추석 때 주제 넘게 집에다 선심 쓰느라 당장 수중에 돈도 없고, 월급 날이 코 앞이라 그만한 돈도 귀하건만, 안해줬다간 노골적으로 동기들과 비교당하는 셈이니, 이건 뭐....
 
 내가 왜 전화 한 통 받고 쓸 데 없이 동기들 한테 자격지심까지 느껴야 하는 건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줘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해도 기분이 나쁜거다. 대체 뭔데 나한테 이런 전화 한 통으로 이런 기분까지 들게 하는 건가?

 사실 그 녀석한테 기분이 나쁜건 아니었다. 학생회하면서 오빠들이 선배들한테 전화를 돌린다는 것 쯤은 눈치로 알고는 있었고, 또 본인도 그런 전화 돌리는게 여간 곤란한게 아닐 터. 단지 선뜻 보내주마 하고 말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불쾌감이 오히려 더 컸다.

 암튼 덕분에 기분은 한 껏 다운되어 구경할 마음도 싹 달아나고 갈증만 났다. 속 까지 화끈거리는 것 같아 쥬스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대학 때 매년 그렇게 선배들 지갑을 털어서 좋다고 놀았단 말인가. 생각하니 더 찝찝하다.

 돈 이란게 참...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