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으레 그렇듯 컴퓨터로 뉴스를 확인하는데 내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헤드라인의 뉴스기사가 보였다. 흠칫, 하고 포털 사이트 메인 로고를 봤다. 얘네 만우절이라고 장난치는건 아니겠지.
노무현 前 대통령 사망
후에 '사망'이란 표현은 '서거'로 전부 교체되었지만 내가 처음 봤던 문장은 그것이었다. 기사를 클릭하고 빠르게 훑어보니 그가 음독자살을 기도 했다는 '설'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그러나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뒷산 바위에서 추락해 사망했으며, 실족사인지 자살인지는 분명치 않다는 내용으로 바뀌었을 뿐, 그의 사망은 '설'이 아니라 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
며칠 전 그가 돈을 받았다고 실토한 것과, 그의 부인이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더라 하는 기사와, 몇 몇의 블로그에서 다뤄진 그의 대한 이야기 외에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아니 당신이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왜.
나는 얼마전,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비꼬듯 이야기 했던 그의 감성 정치에 대해 생각했다. 노무현은 과연 전략적인 사람인가. 그는 글로써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를 가진 전략가일 뿐인걸까. 그는 확실히 내 타입의 사람이긴 했다. 정치가로서 그를 100% 지지했나 묻는다면 좀 다른 질문이 되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나는 그의 사상이 마음에 들었다. 앞 뒤 가리지 않고 할 말 하는 것이 노무현의 문제라고 누가 그랬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외교에는 좀 차질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본 총리 앞에서 할 말 다 하고 오는 그의 배포가, 미국에 머리 조아리지 않겠다는 그의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국가 수장으로서의 노무현 보다, 한 사람으로서의 노무현이.
그런데, 그 온갖 모질고 험난한 세월을 겪어내고, 승부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었던 그가 자살을 택하다니. 나는 놀랍고, 또한 혼란스러웠다. 이것 또한 전략이었을까. 죽음으로써 자신을 뜻을 표명하기 위해 그는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일까.
내가 지금 무척 마음이 아픈 것은, 자신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자신을 지탱해주던 가치를 철저히 유린당하고 빼앗긴 뒤에 그가 느꼈을 비관과 좌절 때문이다. 자신이 믿었던 자신이 더이상 자신이 아님을 받아들인 뒤에 그가 느꼈을 모멸감, 치욕.
도무지 이 나라는 왜 이리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인가, 아니 이 나라가 아니라, 그 사람들은 대체 왜 이리 사람들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인가. 도무지 어디까지 가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건 맞는건가, 정녕 '우리' 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가.
내 살아생전에 정치인이 죽었다고 눈물을 흘릴일이 또 있을까. 그에 관한 기사들을 읽고 눈물이 미적미적 흘러 나와 나조차도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그는 낯짝이 덜 두꺼워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부산에서 연이어 낙선을 하면서도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며 계속 출마를 해 '바보 노무현'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 그는 정말 바보였을까, 그래 이 나라는, 그런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는 나라인걸까.
그러나 지금, 바보라 칭하던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나라는, 바보가 살 수 없는 나라인거다.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