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더라고, 그 때 느꼈지. 아 비야 신나게 와라. 그래, 너 신나게 안 쏟아지니까 내가 이까짓거 맞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맞았잖아. 우산도 없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도 모르고 부슬 부슬 내리는 비 다 맞았잖아. 근데 그렇게 신나게 맞아보니 안되겠더라?! 몸은 으슬 으슬 떨리고 너무너무 춥더라고. 입술이 파래지도록 오들 오들 떨면서 비를 맞았더니 아, 그제서야 우산 가져올걸, 우산 쓸걸,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 그제서야 이제 더이상 오는 비를 내가 다 맞게 내버려 둬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무리 가벼운 비라도 그냥 맞으면 안되겠더라고. 금방 그칠거라고, 많이 오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맞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더라고.
나 이제 절대 오는 비 그대로 다 맞게 하지 않을거야. 나는 내가 사랑해줘야지. 이뻐해줘야지. 스치는 가랑비에도 춥지 않게 우산 쓰고, 장화 신고, 철벅 철벅 웅덩이도 건너버릴꺼야.
근데 어제는 비가 오지 않았어. 신기하지? 나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비가 오지 않은거야. 또 억지로 끼워 맞추는거라고 웃어도 좋아. 그냥 우연이었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으니까. 더 기쁘니까.
봤지? 비가 오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