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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단상 #2 너무 길었던 일주일의 끝, 금요일을 기념하여 실컷 자기로 작정하고 초저녁 부터 잠을 청한 탓인지 오늘 아침은 개운 했다. 일어나자 마자 온 갖 재료를 꺼내서 월남쌈을 만들어 먹을 의욕이 생긴걸 보면. 아니면 그쪽으로는 워낙 의욕이 샘솟아 주시는건지도 모르겠고. 혼자서도 밥은 잘먹는지라 라이스 페이퍼 10장을 가뿐히 해치우고 모닝샤워를 했다.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곡을 크게 틀어놓고, 샤워할때의 거품도 리드미컬하게. 그리고 새로산 아주 적당한 선명도의 빨간 매니큐어를 새로 발랐다. 조금 뒹굴거리면서 책을 뒤적이다가, 음악을 듣다가, 집을 나서야 겠다고 결심하고 창밖을 보니 비가 온다. 오늘은 모자쓰고 흰운동화 신고 나가고 싶었는데, 틀려먹었다. 4시간 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무지 우산을 쓰고서는 걸어가기..
아름다운 시절 .1 대학 4학년, 한 해를 휴학하고 다시 다니는 학교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고, 넘쳐나는 심화 전공과 복수전공 과목 과제들로 힘겨워 하던 어느 날, 그마저도 마음의 상처로 쉬이 넘어가주지 않던 그 5월 어느 즈음...도무지 바람을 쐬지 않고는 수업을 못 듣겠다 싶어 수업을 땡땡이 치고 무작정 달려간 바다. 도무지 이 기분으로는 수업을 들을 수 없다며 친구들을 선동해 차에 태우고는 열심히 달려간 바닷가에서 어찌나 신이 났던지, 몇 시간 후 과외를 하러 가야 하는 것도 잊은 체 갑갑한 마음에 신나게 바람을 쏘이고 왔다. 4학년이 되어서도 수업을 땡땡이 칠줄은 몰랐다며 깔깔깔 웃고는, 결석을 만회하기 위해 남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밤을 새웠던 날들... 일본에서 2년 넘게 회사를 다니던 친한 친구가 한국으로 오게..
변치않기를, 혹은 변하기를 변해간다는 것이 두렵다. 나는 변하는 것이 싫다. 제품은 항상 최첨단 새로운 걸 찾으면서도, 나는 오래고 익숙한 것이 좋다. 편안하고, 마음 한 켠이 안심이 되어, 긴장을 늦추고 조금은 느린 기분으로 대할 수 있는 것들, 나는 그런것들을 좋아한다. 아마 오랫동안 마음을 준 물건이기 때문일것이다. 그래서 나는 버리는 걸 잘 못하는 편이다. 수집벽도 아닌데, 이미 오랫동안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조금도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근데 요 근래들어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차마 내가 변했다는걸 알아차리기도 어려울만큼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아끼던 티셔츠가 어느 날 보니 너무 많이 낡아 이제는 집에서 밖에 입을 수 없겠다는 걸 알게 됐을때도, 나는 놀랐다. 언제부턴가 얼굴에 알 수 없는 트러블..
토요일 단상 토요일 답게 늦잠이나 푹 자려고 맘 단단히 먹고 잤는데, 생각보다 일찍 깨고 말았다. 일어나 재미없는 토요일 오전 TV프로를 멍하니 누워 보다가 어제 읽다 잠든 책을 마저 다 읽고 늦은 아침을 챙겨먹고, 책을 또 두 권 더 읽었다. 허리가 아프려고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4시. 자리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핑그르르 돈다. 약간의 빈혈이 있긴 하지만 최근엔 약을 꼬박꼬박 먹어서 좋아졌었는데, 아마도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리라. 사실 어제부터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서, 그래서 맛있는걸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냉장고를 한참 뒤적이다, 어제 소고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냉동실에 언제 두었는지도 모르겠는 소고기가 보였다.더 늦기전에 먹어치워야겠네, 오늘은 어제 사온 굴소스로 찹스테이크를 만들어야지..
심란 요새 마음이 너무 심란하다. 머릿속이 오만가지 생각들로 가득차서 아침이면 항상 꿈속을 헤매다가 눈을 번쩍 뜨면서 깨곤 한다. REM 수면 상태에서 깨는 것인데, 이런 날은 오히려 아침에 정신이 말짱하긴 하지만 종일 몸이 긴장해있곤 해서 피곤하다. 피곤할만도 하다. 요새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터라,
욕심 어렸을적, 엄마는 나에게 욕심이 없어서 큰 일이라고 늘 핀잔을 줬다. 1등이 되려고 하는 욕심, 뭐든 잘하려는 욕심, 그런 욕심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사실 나는 반장보다는 부반장이 좋고, 달리기를 해도 3등안에만 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였고, 뭐든 우두머리나 최고가 되는 것은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변덕이 심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이것 저것 배우고 싶다고 학원을 다니다가도 어느정도 남들이 하는 만큼 비슷해진것 같으면 이내 흥미를 잃곤 했던것 같으니까. 그래서 한 우물만 파서 남들보다 잘하는건 별로 없고, 그냥 어느것이나 고만고만하게 하는, 뭐 그랬던것 같다. 그런 내가 유달리 남들보다 잘하고 싶어했던 것이라면, 새로운 소식이나 첨단제품, 새로운 것들을 남들보다 빨리 접하고 익히는 것. 그렇게 늘..
정서적 공황 사실 거창하게 정서적 공황이랄것 까진 없는데, 아무튼 요즘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불필요한 감정까지 느끼며 사는 나에게 이런 무미건조한 나날이라니, 분명 아무문제도 없는데, 깨림칙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것은, 무언가를 갑자기 미치도록 좋아하게 된다는 것. 아마도 내 자신이 무의식중 푹 빠져버릴 무엇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일에 한 번 꼴로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이런 기분은 사춘기때나 느껴봤음직한 느낌이 드는 대상이 나타나는데, 며칠전에는 어떤 노래가 그랬고 어저께는 원래 어릴적부터 좋아라 했던 무언가가 갑자기 미치도록 더 좋아지고 뭐 그런 식이다. 뭐, 워낙 들쭉날쭉 하고 좋고 싫은게 죽 끓듯 하는 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하다 싶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