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93) 썸네일형 리스트형 누구의 무엇도 아닌 나 이번 브레이크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나 자신에 대한 이해다. 오랜 시간, ‘나는 왜 -할까‘ 하는 고민들에 늘 흔들렸고 그에 대한 주변의 반응에 흔들렸으며 그러니 나를 고쳐야 한다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이 아주 흔한 사고방식을 가진 편은 아니며 그러니 자연스레 타인에게 다름으로 인한 지적을 받을 일이 많을 수 밖에 없고, 그렇다 해서 그것이 틀렸다거나 고쳐야 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조금은 유별난 사고의 흐름을 깨닫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달라서 튀어나온 그 부분이야말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타인의 이해도 인정도 필요로 하지 않은 고유의 나 자신일 뿐이며 나는 그 다름으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 오랜만에 새 취미 목디스크가 올 정도의 미친 독서에 이어 요새 꽂힌 일은 글쓰기다. 정확하게 말하면 만년필로 글쓰기. 처음에는 아침에 일어난 후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전 45분동안 생각을 비워내는 Morning page를 하기로 마음 먹고, 이걸 꾸준히 하려면 글이 쓰고 싶을 만한 마음에 드는 노트와 펜을 구입해보라는 말에 옳다구나 만년필과 작은 노트를 들였다. 역시 장비의 힘이란 어마어마해서 만년필로 사각사각 글을 쓰고 있는 그 느낌이 좋아 쓸 말이 없는 데도 일단 노트를 펴고 아무말 대잔치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넉 달이 넘게 매일 일기를 쓰며 구입할 때 들어있던 카트리지를 다 쓰고 나니 카트리지 소모 속도가 감당이 안되겠다 싶어 병잉크를 사는 것이 경제적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것이 나의 착각 나의 실수 .. 기꺼이 끝까지, 사과 조차 제대로 한 번 하지 못하는 너를 이해하는 나를 그만 미워하기로 한다. 마지막까지 모른체 하는 너를, 그런 니가 이해가 되지 않는게 아니라서 괴로운, 이해하지 못해 안달인 내가 너무 싫었던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오래 미워할 수 없어 그 마음이 더 괴로워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하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 혼자 너를 용서하는 것 따위 아무런 의미 없겠지만 나를 미워했던 나를 용서하는 건 비로소 의미가 있는 일일게다. 상처 받았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아닌척 몸부림 쳤던 자신을 이제 꺼내놓기로 한다. 상처받은 적 없이 치유할 수도 없음을 이해했다. 제일 먼저 그것이 상처였음을 알아차리고, 보듬고, 돌보아야만 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마음에 동여맨 붕대를 풀어내.. Read and write 쉬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것은 읽기, 두 번째로 많이 한 것은 쓰기. 시간이 날 때 마다 이 도서관 저 도서관에서 책을 한 탑 쌓아놓고 마치 책 못 읽어 한 맺힌 사람 처럼 읽어제끼고 있다. 내가 이렇게 읽고 쓰는 걸 좋아했나 싶을 만큼 나 조차도 놀라운 양과 열정이다. 지난 십 년간, 나는 일과 공부에 관련되지 않은 그 어떤 책도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두어 달 동안 지난 십 년동안 읽은 것 보다 더 많은 책과 글을 읽고 썼다. 십 년치의 깨달음과 영감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내 인생 가장 럭셔리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럭셔리함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시간들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 도서관 지박령의 삶 요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새로 발견한 동네 도서관 📖 도서관에 앉아 책 보고 글 쓰는게 이렇게 좋을 일인가, 싶을 만큼 좋다. 다른 사람들은 뭘 읽을까 구경하고, 하릴없이 시간 보내는 은퇴한 할머니 처럼 하루를 보낸다. 이런 시간이 얼마나 필요했던 걸까. 나는 얼마나 지쳤던걸까. 아직은 조금도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작은 한 두 달이었는데, 열어보니 한 두 달로 될 것이 아니었다. 좋아지고 있지만, 내가 있던 곳은 내가 생각했던 출발지점이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언젠가 다시 일을 할 수는 있는걸까 싶다. 아직 멀었다는 사실 하나만 생생히 명료하다. 쉴 수록, 쉬면서 나를 들여다 볼 수록 끝도 없는 상흔과 잔해가 고개를 내민다. 돌아보니 나는 스스로에게 힘들어 할 시간 조차 허락하지 않았더라.. Get better 미친 소리 같지만 한국어로 생각할 때 나는 훨씬 더 감성적인 사람이 된다. 반대로 영어로 생각할 때 나는 상대적으로 더 논리적으로 말하고 사고하고. 다시 말하면 나는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동안은 감성적일 틈이 없다는 뜻이겠지. 내 안의 모든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나를 누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내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을테니까. 내 생각과 감정을 써 보기로 하고 영어와 한국어로 쓸 때 전혀 다른 관점의 글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 모국어로 말할 때의 나는 주관적으로 나를 들여다 본 글을 쓰고, 영어로는 객관적으로 관찰한 나를 쓰려고 나도 모르게 애쓰게 되는 것이다. 뭐, 그게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어로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에게 지금은 좀 더 다정한 .. Burnout, I admitted it. 일 년 반쯤 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해주던 심리 상담에서 내 이야기를 쭉 듣던 상담사가 다짜고짜 당장 내일 HR과 매니저에 이야기 해서 한 달 정도 병가를 내고 쉬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한 달 이나 병가를 줄리가 없다 생각했던 나는 말도 안된다고 했는데, 지금 병가를 내지 않으면 곧 mental breakdown 이 올 수 있다며 그렇게 되기 전에 쉬어야 한다고, 지금 쉬지 않으면 원치 않을 때 더 오래 쉬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가볍게 그 말을 무시한 나는 병가 대신 이직을 택했고, 그 사이 이 주 정도를 쉬고 입사 초기일테니 쉬엄쉬엄 교육이나 받자는 나이브한 해결책으로 갈음했다. 그 상담사의 말이 맞았음을 알게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멈춰야 하는 걸 알면서도 멈출 에너지도 없이 번아.. Ping 살아있다. 돌아왔다. 가장 나였던 곳으로. 이전 1 2 3 4 ··· 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