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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밥 그릇 언제부턴가 '엄마' 라는 말이 슬프다. 엄마, 그리고 아빠, 부모라는 존재를 생각 하면 어느새 부턴가 그토록 가슴이 짠하고 애닲다. 어느 날은 엄마가 밥상에 놓인 생선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8남매의 맏 딸로 태어나,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 식구의 끼니를 챙기고 살림을 도맡아 해야 했는데, 10명이나 되는 입을 먹여야 했으니 여간 큰 살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아직도 손이 커 한 번 했다 하면 기본 3인분이다.) 그랬으니 밥상에 생선을 한 번 올리려고 해도, 한 점 먹기가 영 눈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생선 머리를 즐겨 드시기에 생선 머리를 좋아하시는 줄 알고 밥상에 생선을 올리거나 생선이 들어간 찌게나 탕을 끓일 때..
Lost 한 일주일 쯤 전 부터인가, 입 맛 없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사실 그건 입 맛이 떨어진게 아니라 그간의 미친 식욕이 잠시 주춤하고 정상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었단걸, 오늘 아침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밥 숟갈을 떠넣은 순간 번쩍 깨달았다. 아, 입 맛이 없다는건 이런거였어. 아무런 맛이 안느껴져서 도무지 어떤거든 세 입 이상 먹을 수 없는 그런 것. 참을 인 자 세 번에 세 입씩 골고루 집어먹고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 정말 입 맛이 뚝 떨어진게 이런건가 싶어 시험하는 기분으로 죽고 못사는 와플도 한 개 사먹어봤는데, 평소에는 한박스 사서 그 자리에서 일단 세 개 쯤 해치우는 내가 세 입 먹고 가방에 넣어뒀다. 이건 그래도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 입 맛을 잃어서 그래서 내 유일한 낙..
될 때 까지 한 번, 처음 요리에 재미를 붙여 신나게 만들땐, 그저 그럴싸하게 흉내만 내도 자신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처음 만들어 본 건데 이정도면 훌륭한걸? 하고 속으로 스스로를 추켜세우며 신나하곤 했었다. 어쩌면 그랬으니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요리를 하면 할 수록 욕심만 늘어서, - 그렇다고 어디서 제대로 배우거나 제대로된 책 한 권도 보지 않은 주제에 - 이제는 눈이 빠지도록 공들여 만든 요리가 내가 의도했던 맛이 나지 않기라도 하면 크게 실망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못먹을 정도로 엉망이 된 것도 아닌데, 단지 설탕을 많이 넣어 생각보다 너무 달아졌거나, 아니면 over cook 하는 바람에 수분이 많이 날아가 식감이 좋지 않다거나 할 때 마다, 나는 이내 곧 풀이 죽어 입맛이 뚝 떨어지는 버리는..
뭐, 나쁘지 않아 요새 이 곳에 자주 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그 이유를 잠자코 골똘히 생각해봤더니, 요새 온통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 라고 결론을 내렸다. 난 한가지에 몰두하면 다른 것은 잘 보지 못하니까, 근데 이게 참 문제인거다. 뭘 하고 있으면 전화소리도 잘 못 듣고 누가 불러도 잘 못듣고 노래를 듣느라 이야기를 잘 못듣기도 하고 운전하면서 전화는 절대 못할 뿐 더러, 심지어 운전중엔 대답도 잘 못한다니까. 암튼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흥미 있는 일이면 뭐든 금방 빠져버리곤 해서 열심이게 되지만 그 흥미가 그리 오래가기란 또 쉽지 않아 이 것 저 것 손 대고 벌려놓기 일쑤지만 정작 끝장을 보는 일은 드물어서, 하나에 꽂혀서 그거 하기 시작하면, 하던 건 나몰라..
일 복 어딜가나 일 복 하나는 끝내준다. 전생에 일 못하다 죽은 백수 귀신이 붙은건지. 일 하려고 마음만 먹을라 치면 바로 풀가동. 뭐, 뭐든 내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긴 한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보통 인터뷰 하고 다음 주 부터 해보자고 하거나, 아니면 설사 인터뷰때 언제 부터 나오라고 했다가도, 며칠 안에 혹은 몇 시간 안에 전화가 다시 와서 '내일 부터 당장 나올 수 있겠느냐' 고 하시니 ...아무래도 편히 살 팔자는 아닌가보오 -
조금 더 drive me crazy 푹 - 쉬었다. 며칠 잘 쉬며 맛있는 것도 해먹고, 마음 편히 푹 자고 늘어져 있었다. 가끔 몸이 차거나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 것 같은 때를 빼고는 몸도 괜찮은 편이다. 마음은, 마음은 아직 무어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무언가가 나를 통과하고 있으나 역시 과정중에 있는 까닭에. 그러나 평안을 찾고 있다. 이제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지. 조금 더 많이 읽고, 조금 더 많이 쓰고, 조금 더 많이 뛰고, 조금 더 해야한다. 나는 조금 더 미친짓을 해야만 해. 미친듯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친듯.
새겨듣기 저혈압에 효과적인 뉴스들이 많이 나오는 요즘, 아주 혈액순환 개선에 효과 만점인 기사들이 시시각각 올라오는 시국인지라 이대로라면 영영 저혈압과는 안녕할 수 도 있을듯한 기분이다. 뭐 굳이 나까지 짜증나는 뉴스를 입에 올리고 싶진 않고, 뉴스를 볼때 평소 댓글은 주의깊게 보지 않는데 모처럼 눈에 띄는 댓글이 있어 가져왔다. 오늘날. 작금과 같은 사태는 왜 생겨났는가. 87년 민주화운동과 비교하면 그 답은 자명하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체 국민의 계몽도 아니요, 전체 국민의 항거 운동도 아니었다. 학생,회사원을 주축으로 한 지금과 비교하면 소수에 지나지 않는 규모였다. 그럼에도 민주화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독재정권 스스로가 염증과 위기를 느꼈고, 민주화 운동에 굴복..
It wasn't rainy 비가 많이 오더라고, 그 때 느꼈지. 아 비야 신나게 와라. 그래, 너 신나게 안 쏟아지니까 내가 이까짓거 맞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맞았잖아. 우산도 없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도 모르고 부슬 부슬 내리는 비 다 맞았잖아. 근데 그렇게 신나게 맞아보니 안되겠더라?! 몸은 으슬 으슬 떨리고 너무너무 춥더라고. 입술이 파래지도록 오들 오들 떨면서 비를 맞았더니 아, 그제서야 우산 가져올걸, 우산 쓸걸,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 그제서야 이제 더이상 오는 비를 내가 다 맞게 내버려 둬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무리 가벼운 비라도 그냥 맞으면 안되겠더라고. 금방 그칠거라고, 많이 오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맞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더라고. 나 이제 절대 오는 비 그대로 다 맞..